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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액션신, 사막 추격신…'버추얼 스튜디오' 한곳서 다 찍는다

배우가 'LED 화면' 앞에 서면 우주·바닷속·판타지 공간까지 순식간에 영화 배경으로 전환 촬영기간·비용 30~40% 줄어 넷플릭스 등 OTT社 적극 활용 영상 콘텐츠 보는 방법도 변화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것 넘어 고글 끼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


LED(발광다이오드) 화면을 활용해 영화·드라마를 찍는 ‘버추얼 프로덕션(가상 제작)’ 시대가 다가왔다. CJ ENM 직원들이 경기 파주의 가상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 CJ ENM 제공

지름 20m, 높이 7.3m짜리 초대형 LED(발광다이오드) 화면이 오색 단풍으로 가득 찼다. 버튼을 누르자 가을 숲은 순식간에 사하라 사막이 되고, 다시 미국 맨해튼 ‘빌딩숲’으로 변신했다. CJ ENM이 최근 경기 파주에 설치한 ‘가상 스튜디오’의 모습이다. 시각특수효과(VFX), 언리얼엔진 등 ‘퓨처테크’ 덕분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버추얼 프로덕션(가상 제작)’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지난 14일 방문한 ‘할리우드 최고(最古·110년) 스튜디오’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파라마운트픽처스에서도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이 감지됐다. CJ 파주 스튜디오에서 본 것과 비슷한 LED 화면이 등장한 것.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버추얼 프로덕션 시장 규모는 지난해 16억달러(약 2조3000억원)에서 2030년 67억9000만달러(약 9조8000억원)로 네 배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주·판타지 공간도 VFX로 구현

버추얼 프로덕션은 디지털 기술과 특수 시각효과를 활용해 현실과 가상 공간을 잇는 제작 방식이다. 배우가 거대한 LED 화면 앞에 서면 엔지니어들이 ‘인카메라 시각특수효과(ICVFX)’ 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화면을 합성한다. 이 기술 덕분에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아마존 밀림, 사하라 사막은 물론 우주와 심해, 판타지 공간에 직접 가지 않고도 순식간에 영화의 배경을 구현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움직이는 배우와의 합도 어색하지 않다. 배우의 시선과 걸음 속도 등에 맞춰 영상에 나오는 풍경도 움직이도록 설계된 덕분이다.




현재 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크로마키 기법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이다. 크로마키는 녹색 천 앞에서 장면을 촬영한 뒤 나중에 배경을 합성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빛의 방향을 정확하게 구현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없는 천 앞에서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하기 일쑤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다르다. 실제와 똑같은 LED 화면을 배경으로 찍는 만큼 상대적으로 자연스럽다. 제작 기간과 비용도 30~40% 줄일 수 있다. 배경만 바꾸면 같은 스튜디오 안에서 여러 장면을 촬영할 수 있다. 별다른 장비를 설치하지 않고 아예 다른 작품을 찍을 수도 있다. 디즈니의 제작 스튜디오 ‘ILM’, 소니픽처스의 ‘소니 이노베이션 스튜디오스’ 등은 이미 이런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넷플릭스도 최근 국내에 버추얼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버추얼 프로덕션 방식은 이미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올해 개봉한 영화 ‘더 배트맨’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버추얼 프로덕션을 통해 제작됐다.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XR 콘텐츠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뿐만 아니라 ‘보는 법’도 바뀌고 있다. 시청자가 작품을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것을 뛰어넘어 아예 영화·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한 부분이 되는 ‘확장현실(XR)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관객은 고글처럼 생긴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착용하고 스스로 콘텐츠의 일부가 된다. 3차원(3D), 4차원 콘텐츠보다 더 나아간 미래형 콘텐츠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제작 총괄을 맡았던 조 힙스 피프스시즌(옛 엔데버콘텐트) TV 스튜디오 부문 총괄은 “VR·AR 기기가 보편화되면 모두가 집에서 XR 콘텐츠를 즐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라마운트 등 글로벌 콘텐츠 기업도 여기에 대비하고 있다. 박이범 파라마운트 아시아 사업·스트리밍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파라마운트는 미래 콘텐츠를 준비하는 ‘퓨처리스트’ 팀을 꾸리고 메타버스, 대체불가토큰(NFT) 등 신기술과 접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메타버스를 이용하면 시청자가 게임처럼 1인칭 시점에서 콘텐츠와 소통하며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르면 2025년부터 메타버스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음악 공연도 메타버스로

디지털 기술이 바꾸고 있는 건 영상 콘텐츠뿐만 아니다. 음악산업에선 메타버스를 활용해 신곡을 선보이고 콘서트를 여는 게 일상이 되고 있다. 걸그룹 블랙핑크는 지난 8월 모바일 전투게임 ‘배틀그라운드’에서 메타버스 콘서트를 열었다. 멤버들과 닮은 3D 아바타들이 약 8분간 무대를 휘젓고 다녔다. 모션캡처 작업을 통해 실제 멤버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했다. 해외에선 움직임이 더 활발하다. 세계적인 힙합가수 트래비스 스콧은 2020년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라이브 공연을 열고 신곡을 발표했다. 3D 렌더링된 스콧의 아바타가 하늘에서 등장하는 등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연출을 선보였다. 당시 메타버스 콘서트를 즐기기 위해 게임에 접속한 사람은 1230만 명에 달했다. 로스앤젤레스=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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