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가 가진 힘이 대단했고 이걸 구현하는 게 관건이겠다는 생각을 했다.”(정성진 VFX 슈퍼바이저) 이순신 장군의 일기 <난중일기>와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이순신에 관한 다큐멘터리, 그 밖의 영상 자료들 등 정성진, 정철민 VFX 슈퍼바이저는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료들을 참고했다. “영상 자료들을 보면서 느낀 건거북선이나 학익진의 규모, 전투의 진행 방식 등을 VFX로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 없었다는 거다. 걱정도 됐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가 한번 잘 준비해 구현해보자는 생각을 했다.”(정성진 VFX 슈퍼바이저) 후반작업 기간만 1년. 1천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투입돼 <한산>의 그림을 완성해갔다.
해상 촬영 없이 구현해낸 해전
<한산>은 바다에 배를 전혀 띄우지 않고 해상 신을 진행했다. “일부는 실제로 배를 띄우고 촬영하고 일부는 VFX로 작업하는 건 <명량> 때 이미 한 방법이다. 전작과의 차별점을 두기 위해 완전히 다른 방법을 택했다. 디지털로 구현한 <한산>의 바다는 컬러도 다르고 군사들의 액션도 다르다.”(정성진 VFX 슈퍼바이저) 물 표현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두 슈퍼바이저에게도 <한산>은 큰 도전이었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같이 바다에 나가지 않고 찍은 영화들은 있었지만 이건 본격적인 해전이 1시간 동안 이어지는 작품이지 않나. 까다로운 워터 시뮬레이션을 하고 100% 세트 촬영이기 때문에 걱정도 됐지만, 어쨌든 이렇게 가기로 결정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 뒤론 시뮬레이터들을 믿고 갔다.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더 적극적으로 디지털 작업을 개입해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촬영 중반 이후로는 오히려 시원시원하게 가자고 하면서 과감하게 찍고 작업한 부분이 많았다.”(정철민 VFX 슈퍼바이저)
완벽에 완벽을 더한 거북선
<한산>에는 두개의 거북선이 등장한다. 신형 거북선은 구형 거북선과 선체의 높이도 다르고 구형의 단점을 제대로 보완했다. “시나리오에도 신형 구선(거북선)의 선체가 더 낮다는 표현이 있었다. 구형은 탱크와 장갑차 같은 느낌, 신형은 기민하게 움직이는 스포츠카 같은 느낌이 들면 좋겠다고 정성진 VFX 슈퍼바이저와 큰 틀을 구상했다. 와중에 리얼리티를 놓칠 순 없으니까 두 선체의 힘은 유지한 상태에서 어떤 구분점을 줄 수 있을지 작업자들과 계속 대화하고 고민했다.”(정철민 VFX 슈퍼바이저) 주목해야 할 것은 거북선의 머리다. <한산>의 거북선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용의 머리가 배의 위쪽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배의 정면에 달려 있다. “거북선 디자인은 설계도도 없지 않나. 여러 고증과 해석을 결합해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정성진 VFX 슈퍼바이저) “후반작업이 70%까지 진행됐을 때 배의 용머리 디자인을 전부 바꾼 적이 있다. 내부에서의 만족도가 높지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재질과 컬러도 마지막까지 바꿔가며 거북선의 용머리가 어느 각도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도록 했다.”(정철민 VFX 슈퍼바이저)
단단한 무게감과 속도감, 판옥선과 안택선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군의 판옥선과 일본군의 안택선도 여러 차이점을 지녔다. “판옥선은 굉장히 무겁고 단단한 배다. 나무 두께도 어마어마하고 화포를 싣고 다녔기 때문에 더 그렇다. 판옥선은 왜선과 적당한 거리만 유지하면서 학익진의 영역 안으로 왜선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에 맞춰 디자인했다. 반대로 왜선인 안택선은 배의 무게가 가볍고 선체의 아래가 뾰족하게 생겼다. 전장에서 사용하는 배다 보니 속도감이 중요하고 또 판옥선처럼 화포를 실은 게 아니라 조총을 든 일본 군인만 타고 있기 때문에 배를 무겁게 만들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그런 목적에 따라 우리도 각각의 컨셉을 잡아갔다. 그런데 안택선을 40% 정도 작업했을 때 디자인이 너무 투박하다, 더 힘있게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그때도 안택선의 디자인을 다시 해야 했다. 새로 작업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어쨌든 현재로선 디자인을 바꾼 결과물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정성진, 정철민 VFX 슈퍼바이저)
학익진 전법, 익숙한 만큼 명확하게
역사 시간에 학익진 전법에 관해 개념적으로 배우긴 했지만,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최종 승리에 이르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단계적으로 더 정확하게 해석해 보여줘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웅장한 승리를 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조선군이 왜군을 바다 위에서 완벽하게 무찌른 싸움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줘야 했다. 관건은 개연성이었다. 등장하는 조선군, 왜군 배가 워낙 많고 진행 상황도 복잡하기 때문에 이 배는 어디에 있고 저 배는 어디에 있는지 개별 위치를 조명해가며 전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복잡하게 설계된 전투지만, 그럴지라도 자기들끼리만 바쁘게 싸우고 관객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에 되도록 심플하면서도 재밌게 보여줄 수 있는 상황들에 관해 고민을 많이 했다.”(정철민 VFX 슈퍼바이저) “장수와 군사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과감하게 택한 것이 바로 항공숏이다. 또한 어떤 배의 상황을 지켜보면 될지 짚어주기 위해 클로즈업도 많이 사용했다.”(정성진 VFX 슈퍼바이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