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3년 만에 공개한 <아바타> 속편 속 시각 효과(VFX)가 관객들을 또 한 번 사로잡으며 영화계 판도를 바꿨다. VFX의 미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또한 열악한 것으로 알려진 VFX 업계의 전반적인 근로 환경은 어떨까. 한나 플린트 BBC 기자가 살펴봤다.
사진 출처,ALAMY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오랫동안 영화의 선구자로 여겨진 인물이다. 캐나다 출신의 이 영화계 거물은 '터미네이터', '심연', '타이타닉' 등의 작품을 통해 영화 촬영 기술의 기준을 높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2년 미국의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는 이러한 카메론 감독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심해에서 떨어진 대중의 '기준치(the bar)'를 끝내 찾아 말 그대로 '기준치를 올리는' 업무를 완수한 카메론 감독 캐릭터는 "제임스 카메론은 제임스 카메론이 제임스 카메론을 위해 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고 말한다.
"제임스 카메론은 제임스 카메론이 하는 일을 합니다. 왜냐하면 제임스 카메론은… 제임스 카메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카메론 감독이 지난 2009년 세상에 공개한 영화 '아바타'는 감독의 영화 제작 능력의 정점으로 여겨졌다. 영화 '아바타'는 작년과 올해 재개봉 수입까지 더해 누적 매출액으로 총 28억5000만달러(약 3조 5000억원)를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가 됐다.
사실 그 줄거리는 1992년 개봉한 호주의 애니메이션 영화 '푸른 골짜기'와도 거의 유사하다. 백인 남성인 구원자가 식민지 산업화에 맞서 싸우기 위해 동·식물이 풍부한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토착민들과 힘을 모은다.
그러나 영화 '아바타'의 시각 효과(VFX)는 전 세계의 비평가들과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정글로 덮인 판도라 행성의 모습이 얼마나 혁신적으로 화면에 구현됐는지 찬사가 이어졌다.
그렇게 카메론 감독과 '웨타 워크숍'('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감독인 피터 잭슨이 설립한 시각효과 전문 회사)은 영화 관람객들을 매혹했다.
미국 언론인 앤 톰슨은 '인디와이어'의 인터뷰에서 "영화 '아바타'는 영화 스토리 기술과 시각적 가능성을 축하하는 즐거운 축제의 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카메론 감독은 누구도 하지 못한 영화 기술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해냈습니다."
기술의 발전 덕에 '아바타: 물의 길'에선 캐릭터들이 더 세밀하게 표현됐다
그로부터 13년 후 카메론 감독과 제작사 '라이트스톰 엔터테인먼트', '웨타 워크숍'은 또 한 번 관객들을 판도라의 세계로 돌려보냈다.
총 4편으로 예정된 속편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은 슈퍼히어로 영화로 가득한 할리우드 영화계를 부끄럽게 만드는,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키는 CGI(컴퓨터 생성 이미지) 기술로 다시 한번 영화계 판도를 뒤집었다.
한편 '타이타닉', '아바타', '알리타: 배틀 엔젤'에 이어 이번 '아바타: 물의 길'에서 카메론 감독과 호흡을 맞춘 제작자 존 랜도우는 첫 편 개봉 직후부터 속편 제작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랜도우는 BBC 컬쳐와의 인터뷰에서 "첫 편이 개봉한 이후인 2010년 부서장들을 불러 모아 '만약 우리가 '아바타'의 속편(들)을 만들 정도로 미친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과정에서 개선해야 할 점들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관객들에게 더 환상적이고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까' 물었다"고 회상했다.
다음 단계로의 도약
먼저 얼굴 연기를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이었다.
1편의 경우 '웨타 워크숍'은 여주인공이자 나비족 전사인 네이티리(조 샐다나 분)부터 남자주인공이자 전직 해병 출신인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 분)와 식물학자 그레이스 박사(시고니 위버 분)가 아바타(인간이 판도라 원주민인 나비족과 상호작용하고 판도라 행성의 대기에서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분신)의 모습일 때 배우들의 얼굴의 뚜렷한 세부 사항을 포착하기 위해 'FACET(측면) 시스템'을 사용했다.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VFX 전문가들은 배우들에게 마커가 붙어 있는 퍼포먼스 캡처 슈트를 입히고 머리엔 카메라를 장착해 이들의 근육, 머리카락, 피부가 어떻게 실시간으로 움직이는지 상세하게 추적한 뒤 캐릭터에 그대로 입힐 수 있었다.
이번 '아바타: 물의 길'에선 배우들의 표정을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 수를 더욱 늘리는 한편 3차원 컴퓨터그래픽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폴리곤의 수를 늘리는 등 더욱 발전한 기술을 적용했다. 덕분에 땅 위와 물속을 막론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표정 등이 더욱 세밀하게 캐릭터에 녹아들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랜도우는 "사실성을 더욱더 높이기 위해 첫 번째 영화에서보다 배우들의 연기를 훨씬 더 세밀하고 완성도 높게 포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웨타 워크숍'의 기술 효과 혹은 제작사만의 역량으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매혹적인 캐릭터를 스크린에 담아내기 위해 모두 힘을 모았습니다. 저희는 배우-감독 중심의 프로세스를 만들고자 집중했습니다."
2017년 9월 카메룬 감독은 실사 장면을 촬영하기도 전에 우선 퍼포먼스 캡처 기술을 통한 촬영을 먼저 시작했다. 장면에 따라 배우 23명이 동시에 수트를 입고 촬영에 임하기도 했다.
1편에선 컴퓨터로 구현한 장면이 70~75% 정도이지만, 이번 속편의 경우 그 비율이 90%에 이른다고 한다.
한편 나비족이 함께 판도라 행성에서 사는 인간 소년인 마일스 '스파이더' 소코로(제이크 챔피언 분)는 제이크 설리(현재는 나비족으로 완전 체화)나 네이티리 같은 나비족을 맡은 배우들이 퍼포먼스 캡처 수트를 입고 연기할 때 함께 현장에 있었다.
이에 대해 랜도우는 "제이크 챔피언은 출연하는 모든 장면을 두 번씩 연기했다"고 말했다.
"챔피언은 키리(시고니 위버 분), 마일즈 쿼리치 대령(스타븐 랭 분), 제이크 설리, 네이티리, 이들의 자녀들과 함께 있는 모든 장면에서 자신의 연기는 촬영되지 않았음에도 동료 배우들과 서로 연기를 주고받고 함께 호흡을 맞추기 위해 현장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1년 반 뒤 제작진은 챔피언을 뉴질랜드로 데려와 챔피언의 연기 부분을 촬영했습니다."
실사 촬영은 2019년부터 뉴질랜드 내 웰링턴과 쿠미우 지역 근처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그렇다면 실사 촬영에 참여한 챔피언과 다른 배우들은 시선 처리는 어떻게 했을까?
랜도우에 따르면 '아바타' 제작진은 막대기에 꽂은 테니스공 등을 이용하는 대신 "마치 스포츠 행사에서 경기장 위에 카메라가 부착된 케이블 시스템과 같은 비슷한 환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촬영 현장에선 카메라 대신 모니터와 스피커를 케이블에 장착했습니다. 그 후 CG로 구현할 캐릭터들의 정확한 위치에 모니터와 스피커가 위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했습니다. 이에 따라 실제 배우들이 정확히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연기를 해야 할지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후 컴퓨터 그래픽 화면과 실제 촬영 화면을 완벽히 결합해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이번 '아바타: 물의 길'의 배경이 대부분 물 속이기에 제작진은 수중 장면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한편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제목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물의 길'이라는 부제가 알려주듯 제이크 설리와 그의 가족들은 판도라 행성을 탐내는 지구인들을 피해 살던 숲을 떠나 바다 환경에 적응해 사는 멧케이나 부족의 보금자리로 이동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이번 속편에선 물이 배경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물 속, 물 주위, 물 위 등 '물'이라는 배경에 맞춰 새로운 차원의 환경과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했다.
랜도우는 "물속에서의 빛의 움직임은 (땅 위와는) 다르다"면서 "이에 따라 수중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선 마커 등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퍼포먼스 캡쳐 방식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이 새로운 방식이 물 위 시스템과 함께 원활히 작동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기 전 카메라 팀과 디지털 엔지니어들은 먼저 바하마로 조사를 떠났다. 이들은 그곳에서 수중 CGI라는 미지의 영역에 말 그대로 뛰어들었다.
랜도우에 따르면 "제작진은 일루(영화 속 수중 생물)와 같은 속도로 이동하는 수중 스쿠터를 타고 물속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의 얼굴엔 물결이 어떻게 일까요? 이들이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물은 얼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저희는 심지어 가발까지 쓰며 물속에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일 때 머리카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조사했습니다. 또 누군가 물에 뛰어들 때 주변에 물거품은 어떤 모양일까요? 이러한 궁금증은 VFX 아티스트들이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한편 배우들은 하와이로 향했다. 이곳에서 숨 오래 참기 훈련을 받았다. 숨을 참을 수 있어야 (CGI로 수중 효과를 넣는 대신) 실제 물탱크 속에서 실제 바다인 듯한 "감각 기억"을 살려 최대한 연기를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랜도우는 "배우들은 마커가 달린 슈트를 입고 얼굴엔 카메라를 단 상태로 물에 들어갔고, 제작진은 물속에서 이들이 펼치는 연기를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속편에서 로날 역을 맡은 배우 케이트 윈슬렛은 "배우들이 들어간 물탱크 안에 거품이 일지 않도록 모든 촬영 스태프들도 숨을 참았다"고 전했다.
윈슬렛은 모든 출연진 중에서도 7분 넘게 숨을 참으며 기록을 세웠다. 카메론 감독은 '데드라인'지와의 인터뷰에서 윈슬렛의 모습은 그야말로 "정적인 무호흡"이었다면서 "수영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얼굴을 물 아래로 숙인 그 모습은 마치 의식이 전환하는 듯한 상태 같기도 했다. 심장 박동조차 느렸다. 윈슬렛은 이러한 방식을 훈련받았다"고 전했다.
"7분여간 숨을 참았다는 소리는 2분 30초~3분 정도 수영하고 연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뇌는 활동하면서 산소를 많이 소모하게 됩니다. 즉 수영하거나 물속을 돌아다니는 행위는 많은 산소 소모로 이어지게 되기에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이 정확히 촬영할 수 있는 시간과 일치하진 않습니다."
한편 3D 기술은 이번 영화의 시각적 세계 구축의 또 다른 주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랜도우는 관객들에게 마치 "관음증적인" 경험을 선사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에서 카메론 감독은 특수 제작된 3D 입체 빔 스플리터가 장착된 '소니 시네알타 베니스 3D' 카메라 시스템을 사용했다.
랜도우는 "3D 기술의 목표는 상영되고 있는 스크린을 없애는 것, 즉 관객들이 극장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 있을 만큼 영화 속 세상으로 향하는 창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 이미지가 어색하질 않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되면 관객들의 '불신의 유예(가상의 이야기에 몰입하면 상식적,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도 개의치 않게 된다는 뜻)'를 방해하게 되니까요."
"만약 관객들이 진짜 주인공 가족과 함께 수중에 있는 느낌을 준다면, 주인공의 연설을 듣는 듯한 느낌을 느낀다면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작진은 액션 장면보다도 (맥락상) 극적인 장면에서 3D 기술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또한 '아바타: 물의 길'의 일부 액션 및 전투 장면은 초당 48프레임(48fps)으로 촬영됐다. 이를 통해 표준 24프레임보다 매끄럽고 사실적인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었다.
랜도우는 "웨타 워크숍은 초당 프레임을 증가시켜 다이내믹 레인지 샷을 렌더링했다"면서 "거기에 실제 사람도 들어가고 클로즈업 화면도 담겼다. 이런 점들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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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FX 아티스트 조 파블로는 마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일했던 경험을 "엉망진창"이자 "미쳤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한편 영화 촬영 기법의 이른바 '불완전함'도 몰입감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물론 VFX 아티스트들은 렌즈 플레어나 카메라의 흔들림을 제거해 화면을 더 완벽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카메론 감독 등 제작진이 이뤄내고자 했던 현실감을 방해할 수도 있다.
랜도우 또한 "시각 효과는 완벽한 예술 형태일 수 있으나, 영화 제작은 그렇지 않다"면서 "그러한 불완전함 중 일부는 그냥 내버려둔다"고 말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카메라를 (완벽하게) 고치고 싶지 않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현실이 아니니까요. 현실 세계에서 제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데 트럭이 옆으로 지나가면 전 움찔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성을 나타내고자 카메라맨도 움찔거리는 행동을 취합니다. 그렇게 화면에 담긴 촬영 기법상 불완전한 부분들 덕에 영화가 더욱 실제처럼 느껴지길 바랍니다."
열악한 근로 환경
한편 이번 '아바타: 물의 길'은 VFX 업계에서 블록버스터 영화 작업 시 업무 환경 및 대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기에 개봉했다.
CGI를 사용한 영화와 시리즈가 많아지는 가운데 제작사의 비현실적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VFX 업계 사람들은 불안정한 근무 시간, 빡빡한 마감 시간,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편집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이 번아웃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작품의 작업 환경이 가장 힘들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VFX 아티스트들은 뉴스 언론을 통해 경영진들이 점점 더 까다로운 요구를 내놓으면서도 끝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렌더링 작업에 대해 적절히 보상하지 않는다며 '마블 스튜디오'('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자회사)를 비난했다.
한편 스캇 스콰이어스는 미국의 특수 효과 및 시각 효과 스튜디오인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에서 20년간 근무했으며, 영화 '마스크'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 등에 참여한 베테랑이다.
스콰이어스는 BBC 컬처와의 인터뷰에서 VFX 아티스트들에게 주어진 업무량이 많다면서 "디지털 시각 효과를 통해 VFX 아티스트들이 강력한 조작과 창작의 도구를 얻게 됐으며, 모든 분야에서 VFX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더 많은 착취가 일어난다"라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스콰이어스는 "내가 이 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해도 대형 영화의 시각 효과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스튜디오에 직접 고용된 이들로, 할리우드 노조에도 가입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VFX 노동자 조합이 없기에 보호받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지나친 야근을 시키고 있진 않은지, 야근 수당은 제때 지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죠."
한편 또 다른 유명 VFX 아티스트 조 파블로 또한 지난 8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마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의 작업 경험을 "엉망진창"이자 "미쳤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시각 효과 업계엔 열심히 일하며 호의로 가득 찬 훌륭한 사람들이 많지만, 이들이 궁지에 몰리거나, 디즈니사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편 현재 업계를 떠났다는 전직 VFX 전문가는 BBC 컬쳐와의 익명 인터뷰에서 마블과의 작업 이후 결국 참지 못하고 업계를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7일, 매일 10~12시간가량 일했다"는 그는 "개봉을 불과 한두 달 앞둔 시점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촬영했다. 그렇게 촬영 일정이 늦어졌지만 [개봉] 일정을 연기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마블 프로젝트는 모든 [VFX] 스튜디오가 저가를 내세워 경쟁하게 만들기에 수익률도 매우 낮습니다. [다른 대부분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더 적은 인원으로 작업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팀원의 작업량이 늘어나고 당연히 근무 시간도 길어집니다.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일하고 나니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고 싶어졌습니다."
BBC 컬쳐는 여러 마블 영화와 TV 프로젝트 등에 참여한 적이 있는 또 다른 VFX 아티스트를 만났다. 여전히 현직이기에 익명을 요구한 이 전문가는 마블이나 디즈니와 같은 스튜디오가 VFX 아티스트들에게 좋은 작업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거의 모든 주요 고객사가 결정을 미루거나, 결정을 바꾸거나, 일정이 빡빡한 데도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마블을 이 모든 행위를 일관되게, 그리고 더 심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마블사와 VFX사의 관계는 점점 더 나빠져 가고 있습니다. 마블사가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고, 결정을 뒤집는데, 이 모든 요구 사항을 더 빡빡해진 일정 속에 해내야 합니다. 그 결과 VFX 아티스트들은 한 번에 몇 달씩 장기간 과로하게 됩니다."
BBC 컬처는 이러한 주장에 관한 의견을 듣고자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 연락했다.
한편 앞서 업계를 떠났다는 VFX 전문가는 VFX 작업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거나 적절한 지시를 주지 않는 감독들도 있다며, 이들의 이해 부족 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부 감독들은 촬영이 끝나면 거의 손을 뗀다"는 그는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VFX] 작업본을 받고 메모를 전달해주는데,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VFX에 익숙하지 않거나 잘 알지 못하는 감독들은 즉시 완성된 품질의 작업본을 요구한다. 제가 참여한 많은 프로젝트에서도 완성된 프레임을 달라고 했으나, VFX 작업은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카메론 감독처럼 VFX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작업 과정에서 VFX 팀과 협업을 추구하는 영화 제작자들도 있다고 언급했다.
"카메론 감독이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매우 강한 비전을 지녔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 꼼꼼하게 계획한다. 이러한 감독들 또한 당연히 기존 계획에서 일부 수정하겠지만, 여전히 아이디어가 훌륭하다"는 것이다.
'아바타: 물의 길'의 경우엔 어땠을까. 랜도우는 속편 촬영 내내 VFX 아티스트들이 카메론 감독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것을 정확히 얻을 수 있도록 영화 제작 부서와 시각 효과 부서 간 긴밀히 협력했다고 설명했다.
랜도우는 "VFX 아티스트들에게 정확히 어떤 카메라 각도를 원하는지 명확히 설명한 한편, 우선 낮은 해상도에서 원하는 장면을 정확히 설명한 뒤 고해상도에서 마치 사진처럼 구현해내기를 요구하는 등 순차적으로 이어 나갔다"고 언급했다.
또한 사내 네트워크에 접속해 피드백을 주고받았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웨타 워크숍사가 사내 시스템 접근을 허락해준 덕에 하루에 최대 7시간씩 [영상을] 리뷰한 뒤 '이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더 나은 방식은 없는지?' 등의 질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AL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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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실사 드라마 '만달로리안'에는 '스테이지크래프트 유닛'으로 알려진 획기적인 "가상 영화 제작 환경"이 이용됐다
또한 '아바타: 물의 길'은 제작에만 10년 넘게 걸렸다. 그렇기에 제작 과정이 급했다고도 비난할 수 없다. 개봉일 또한 원래 작년 12월 17일로 예정됐으나, 올해 12월 16일로 미뤄졌다.
이에 대해 랜도우는 "우리는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면서 "누군가 내게 '영화 제작은 언제 끝나냐'고 물었다. 이에 나는 '개봉 하루 전날'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프로덕션 시각효과 감독인] 조 르테리, [수석 시각효과 감독인] 에릭 사인돈 뿐만 아니라 나머지 웨타 워크숍 팀원들 모두 제대로 해내고자 어떤 것도 서두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렌더링하는 데 2~3주가 걸리는 장면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정말 그 시간 그대로 쏟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팀과 함께 일하기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팀원들은 뛰어나게 탁월한 결과를 내놓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웨타 워크숍'사 또한 또한 직장 문화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지난 2020년 뉴질랜드의 변호사 미리암 딘이 전·현직 직원 200명 이상을 독자적으로 인터뷰한 결과, 직원들은 괴롭힘, 성희롱, 차별로부터 보호받지 못했으며, 인사 관행이나 정책 및 프로세스 등이 "미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괴롭힘과 적절하지 않은 대우로 각각 80건, 120건의 신고가 제기됐다.
이에 웨타 워크숍의 설립자인 피터 잭슨 감독과 프랜 월시(뉴질랜드의 영화 제작자이자 잭슨 감독의 아내)는 "권고 사항을 이행하고, 업계 리더로 계속 남아있는데 필요한 사내 문화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웨타 워크숍은 업계 리더로서 지난 10년간 가장 혁신적이고 인상적인 VFX 결과물로 손꼽히는 '아바타: 물의 길'을 만들어 냈다.
VFX 업계를 논하려면 스타워즈 실사 드라마 '만달로리안' 작업에 참여한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사도 빼놓을 수 없다. 해당 드라마에선 LED 기반의 벽면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가상 영화 제작 환경을 이용했다. 감독이 해당 장면의 디지털 배경이 어떻게 구현될지 현장에서 볼 수 있기에 그에 맞는 카메라 각도 및 배우들의 연기를 지시할 수 있다.
한편 스콰이어스는 "최근 들어 작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AI 기술을 채택하고 있어 주목할만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배우 재구현에 머신러닝이 활발히 이용되고 있습니다. 카메론 감독 또한 '아바타' 시리즈에서도 머신 러닝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나비족의 이미지로 입힌 뒤 CG 모델로 재표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선 여러 공학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웨타 워크숍은 특히 그 분야에 관한 좋은 연구를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콰이어스는 또한 "새로운 기술 덕에 VFX 아티스트들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으며, 창의적인 구현을 위한 더 많은 옵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90년대의 컴퓨터 그래픽을 포함한 디지털 발전을 넘어 오늘날에는 LED, 실시간 렌더링, AI 관련 도구 등이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 덕에) 과거 VFX 아티스트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지루하게 수작업했던 부분은 부분적으로 자동화됐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영화 제작자들은 원대한 영화적 꿈을 실현할만한 더 큰 자유를 얻게 됐으나, 그렇게 더욱 복잡해져 가는 요구를 VFX 아티스트들에게 전달하는 과정과 업계 문화는 더욱 발전하고 개선될 필요가 있다.
스콰이어스는 "영상을 고속으로 주고받고 VFX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면서 온종일 전 세계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는 VFX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업을 감독하고 모니터링하는 이들은 오전 8시, 오후 5시, 자정, 새벽 3시 할 것 없이 리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스콰이어는 노조 결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는데, 다른 전문가들 또한 VFX 업계를 다시 건강하게 되돌려 놓기 위해선 힘을 뭉쳐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파블로는 "국제적으로 VFX 전문가들이 뭉치지 못하고, 또 시각 효과 기업 간 협업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근로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블로는 "시각 효과 기업들은 서로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경쟁하는데, 마블(그리고 다른 고객사도) 이를 잘 알고 서로 경쟁하게 놔둔다. 그렇기에 아티스트들은 엄청난 초과근무에 시달리며 번아웃을 겪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시각 효과 기업들은 손해 보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시각 효과 스튜디오들이 직원들에게 더 나은 근로 시간이나 혜택을 제공하거나 삶의 균형을 보장해 줄 인센티브가 없다"는 게 스콰이어스의 생각이다.
"개인이 단독으로 맞서긴 어렵지만, 만약 뭉친다면 VFX 스튜디오 또한 직원들의 의견을 우선시할 것입니다."
'아바타: 물의 길'은 현재 국제적으로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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